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마태 27, 54]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1870년, 동판에 유채, 104x92cm, 국립역사박물관, 코펜하겐, 덴마크)
칼 하인리히 블로흐(Carl Heinrich Bloch, 1834-1890)는 프레데릭스보르 성 크리스티안 4세 왕실교회 기도실에 <예수님의 생애>를 주제로 23개의 작품을 그렸다. 그가 1870년에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연작 중 스물 한 번째 작품으로, 마태오복음 27장 32-56절, 마르코복음 15장 21-41절, 루카복음 23장 26-49절, 요한복음 19장 16-30절이 그 배경이다.
예수님께서는 ‘해골 터’라는 뜻의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른쪽 아래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아담의 해골은 예수님께서 아담의 원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셨다는 교리에서 기인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배경으로 예루살렘 도성이 보인다. 십자가 명패에는 히브리말과 라틴말과 그리스말로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숨을 거두셨다. 낮 열 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숨을 거두신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많은 피를 흘리셨지만, 임종의 경련을 보이지 않고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으며, 예수님의 몸에서는 후광과 함께 빛이 난다.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서막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들을 잃은 고통 때문에 실신하여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팔을 벌린 모습이 마치 십자가에 매달리신 아들의 모습을 닮았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님의 머리를 무릎에 올려 놓고 십자가에 기대어 망연자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도 요한은 바위에 앉아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신 스승의 유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퀭한 눈을 하며 멍하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고,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요한 19,31. 38)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기 위해 사람들을 시켜 사다리를 가져오게 했고, 수의를 챙기게 했으며, 실신하신 성모님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성모님의 발치에는 봄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하얀 야생화가 조심스럽게 피었다. ‘해골 터’에도 부활의 봄은 오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손용환 요셉 신부(풍수원 성당)]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