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 11, 25]

조토 디 본도네의 다시 살아난 라자로
(1306년, 프레스코, 200x185cm, 스크로베니 경당, 파도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 장면인 이 그림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수님과 라자로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들, 다른 목격자들(군중), 마리아와 마르타가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은 역시 예수님이며 , 오른손을 들어 무덤에서 나온 라자로를 축복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향해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요한 11,43) 하고 명령하신 것이 평범한 말이 아니라 생명의 힘을 지닌 말씀임을, 화가는 예수님의 강렬한 시선으로 분명하게 나타낸다. 화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유한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분으로 그리고 있다. 하느님만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초자연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광경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의 발 아래는 라자로의 여동생 마르타와 마리아가 엎드려 있다. 엎드려 있는 모습은 죽은 오빠 라자로를 살리고자 하는 그녀들의 절박한 심정을 잘 드러낸 동작이다. 또한 그 모습은 예수님만이 자신들의 소망을 채워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대변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마르타와 마리아의 머리에는 제자들과 라자로처럼 후광(머리 둘레를 두르는 원형 광채로 신성함과 거룩함을 뜻함)이 그려져 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께 속해있다는 의미이다. 그림 오른쪽에 온몸이 흰 천으로 동여매진 라자로가 무덤 앞에 나와 있다. 그 옆의 사람들은 나흘 전에 죽은 사람에게서 나는 썩은 냄새 때문에 옷자락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운집해 있는 사람들은 몹시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표정과 행동을 취하고 있다. 라자로는 창백한 얼굴이 참으로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의 눈이 열리고, 입술이 조금 벌어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새로운 숨을 쉬는 것처럼, 죽었던 라자로에게 서서히 생명의 기운이 돌아오고 있는 표현이다. 생명의 힘은 동굴 무덤 위의 푸른 나무들에도 보인다.
이렇듯 라자로의 부활로 예수님은 장차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사람들에게 예고하고 있다. 오른쪽 앞의 두 사람은 무덤 입구의 돌을 힘겹게 치우고 있다. 예수님 역시 혼자서는 움직이기 불가능한 돌무덤에 매장된다. 단단하고 생명이 없는 돌은 장애물이기도 하다. 하느님과 이웃을 만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가기 어려운 장애물일 수도 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닫혀 있는 돌을 치우실 것이다.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참된 믿음’으로, 마르타와 마리아처럼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절한 기도를 드려봅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130,2)
[2014년 4월 6일 사순 제 5주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